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튜더 왕조 (문단 편집) == 시대상 == 종교적으로는 헨리 8세가 [[가톨릭]]-[[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 당시 성공회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국교회가 19세기에야 성공회로 명칭을 변경한다.]-[[청교도]]의 삼자 구도를 짜면서 아주 피곤한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젠트리]]와 [[요먼]] 세력이 성장하면서 상업이 발달하여 근대 자본주의 경제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대외적으로는 [[네덜란드]]와 [[스페인]] 세력을 물리쳐 해상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할 기초를 쌓았다.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대영제국]]의 시작을 알리면서 영국 정부의 재정이 건실해지던 시기였다.[* 이 시기를 영국의 전성기로 아는 사람들이 있으나, 정확히는 전성기로 향하는 토대가 쌓이는 시기였다. 앤 서머싯의 엘리자베스 1세 전기를 보면 재정 때문에 늘 노심초사하고, 강대국 스페인과 (펠리페 2세 시절) 프랑스를 되도록이면 자극하지 않으려는 여왕의 모습이 보인다.] 문화적으로는 토마스 모어, 존 던 등 지금도 영국에서 손꼽히는 문학가들이 활동했으며, 무엇보다도 영문학계의 [[본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이 시기 사람이다. 활발하고 진취적인 분위기의 튜더 왕조의 문화는 엘리자베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엘리자베탄(Elizabethan)' 문화라고도 이름 붙여졌다.[* 반면 18세기에 들어 스튜어트 왕조가 옹립되었는데, 제임스 1세가 통치를 막장으로 하자 [[꿈도 희망도 없어]]하고 현실에 절망하는 어두운 분위기의 문화는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자코뱅(Jacobean)' 문화라 불린다.] 대체로 영국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로 꼽힌다. [[헨리 8세]]의 경우 막강한 왕권을 제멋대로 휘둘렀으나 복잡한 사생활과 [[결혼]]을 6번이나 한 덕에, 대중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있고 그의 인생은 오늘날까지도 대중매체의 인기 소재로 자주 다뤄진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의 경우 영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 중 한 명이다. 이 탓에 영국에선 지금도 여왕이 즉위하면 나라가 잘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권리장전과 하노버 왕조 이후엔 왕이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정치적으로는 영국 역사상 유일하게 왕이 의회를 권력으로 찍어누른 시대였다. [[장미 전쟁]]은 잉글랜드에서 오랫동안 권세를 누린 대귀족간의 내전이었고 여기서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모조리 죽어나가면서, 그들의 힘은 물론 숫자 자체가 엄청나게 줄어들었고 귀족들로 구성된 의회의 힘도 약해질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에 비례해 왕권은 아주 강력해졌다. 무엇보다 헨리 7세부터 엘리자베스 1세까지의 왕의 권력은 튜더 왕조 이전에도 이후에도 꿈도 못 꿀 정도로 막강했다. 물론 당연히 프랑스, 조선, 중국보다 크지 않았지만 그래도 절대왕정이라 불릴만했다. 특히 이때 영국 국왕은 의회를 재정/돈, 군사 등으로 찍어누르고 마음대로 국정을 주도했다. 심지어 헨리 7세/헨리 8세,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 때 의회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었다. 이렇게 강력했던 절대왕권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된 후, [[제임스 1세]] 시대의 중기부터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본인도 검소하고 드레이크가 막대한 자본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후에 스페인과의 전쟁 등으로 거대 자본이 필요하자 왕실 부동산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이후 드레이크가 죽고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왕실 금고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엘리자베스 1세 말기에 조금씩 힘을 회복하던 의회가 금전적으로 압박하면서 왕권이 축소되기 시작한다.][* 이전엔 제임스 1세가 사치가 심했다고 나오는데 이는 오류다. 사실 사치로 치자면 엘리자베스 1세가 더 심했고, 이조차도 여왕 본인의 사치가 심한 건 결코 아니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딱 한 분야 드레스와 보석을 구하는데 꽤 돈을 많이 쓴 건 빼면 검소한 편이었다. 제임스 1세는 사치는 커녕 손수 근검절약하며, 생판 외국이나 다름없었던 잉글랜드를 꽤 제대로 통치했던 군주다. 특히 제임스 1세는 돈을 많이 쓰는 자신의 왕비 [[덴마크의 아나]]를 제지시킬 정도였다. 그리고 제임스 1세의 왕권도 강력해서 자신에게 반항하는 의회를 강제로 해산시켜버리고 의사 결정을 해도 그 누구도 국왕을 제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실정을 벌여 절대 왕권을 몰락시킨 군주는 제임스 1세의 아들 [[찰스 1세]]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진 건 [[잉글랜드 내전|의회에게 완벽하게 패한]] [[찰스 1세]] 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